본문 바로가기

일상

생존본능

'연서는 깐족거리는 스타일이라서, 초등학교 들어가면 친구들한테 많이 맞을 상'이라고 심슨군이 종종 말했다.

글쎄? 

현진이는 소심하고 비교적 과묵한 스타일인반면, 연서는 까불까불하고 깐족거리는 스타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매를 벌 정도로 깐족거리는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오히려, 걸핏하면 눈물부터 흘리는 마음 여린 현진이보다, 연서가 더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데.., 몇년 지나면 곧 알 수 있겠지.


코파코파中,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이 좋다. (2017/1/12)


연서가 3세부터 5세까지 다녔던 어린이집.

모든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어린이집이었지만, 

연서는 거의 맨날 꼴찌로 하원하는데, 가끔씩 평소보다 더 많이 퇴근이 늦어질때면 선생님들께 민폐 끼치는것때문에 마음이 너무 불편했었다. 

물론, 그런 일로 선생님들이 내게 눈치 주진 않으셨고, 나 역시 가끔씩 선생님들 간식을 챙기거나, 어린이집 행사때마다 약간의 성의표시를 하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왔다.


하지만 퇴근시간에 대한 은근한 부담은 차곡차곡 쌓여 강박증을 낳았고, 퇴근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고 골치가 아팠다.


굳이 표현하자면, 뭔가에 눌린듯한 이런 느낌 (2017/1/16)


나는 아직 일이 안끝났는데, 연서는 어린이집에 혼자남아 엄마오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다른 가정의 엄마이니 빨리 퇴근해야 될텐데, 누가 나대신 좀 연서를 하원시켜줬으면 좋겠지만, 애 아빠는 직장이 멀고 먼 타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동면책이 되고, 매번 나만 발동동 구르면서 스트레스 받는게 늘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연서가 다섯살 되자마자 집 가까운 A유치원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심슨군은 현진이가 A유치원에 다니는걸 지켜보았고, 동네 엄마들한테 귀동냥한것을 근거로 A유치원이 별로 안좋은것 같다며, 평판좋은 B유치원에 보내거나, 다니던 어린이집을 계속 보냈으면 하는 속내를 비췄다.


심슨군은 연서의 등·하원이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다보니, 매일매일 하원시키는것 때문에 내가 받는 스트레스에는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불평 불만을 입 밖으로 뱉은적이 별로 없어서 그가 몰랐을수도 있었겠다.

"B유치원? 다른건 다 필요없고, 아이들 학대만 없으면 집 가까운데가 최고다."라고 말은 했지만, 

다섯살은 아직은 좀 어려서 교육보다는 보육이 더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유치원 선생님 보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손길이 더 세심하겠기에 연서를 1년 더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여섯살이 되는 올해 3월부터 연서를 집 가까운 A유치원으로 보내면서 드디어 퇴근시간에 대한 압박감에서 해방되었다.


현진이는 용돈을 모아서 연서의 입팍 선물을 준비했다. (2017/3/1)


집에서 가깝기에 현진이가 학원 끝나고 집에 올때 연서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도록 시켰다.

그리고 여차하면 내년 7세때부터는 현진이가 그랬던것처럼 연서도 혼자서 하원할 수도 있고 말이다.

이제 회사에서 일이 덜 끝나도 부담없이 마저 끝내고 퇴근해도 될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물론, 매일 아이들 저녁밥은 나밖에 챙겨줄 사람이 없기에, 퇴근시간을 무한정 늦출 순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심각하게 많이 홀가분해졌다.


아이들 어릴때는, 어린이집 겨울방학 1주일의 공백이 큰 걱정이었고, 어린이집에 보낼수 없는 전염병에라도 걸릴까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그런일이 생기면 혼자서 집에 있어도 될만큼 성장했다.


뭐든 제 힘으로 들어올릴 수 있을 것처럼 다 컸다. (2017/3/18)


요즘 한창 학부모 상담주간이라서, 시간조절해서 엊그제 현진이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상담을 했고, 끝나고 바로 유치원에 가서 연서 담임도 만났다.


유치원 선생님은 연서 칭찬에 침을 튀기셨다.

연서는 사회성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약속이나 규율을 너무 잘 지키고, 신입생 같지 않게 원래부터 유치원에 다녔던 재원생인것마냥 입학 첫주부터 유치원 생활에 너무 잘 적응했다고 칭찬하셨다.


그런데, 이게 그냥하는 립써비스가 아닌것이,

여태껏 현진이 3세~7세동안 어린이집~유치원 담임들은 현진이에 대해서 별로 침 튀긴적이 없었다.

그런데, 연서는 예~에~전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모두 침을 튀기셨고, 최근에 3년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침을 튀기셨는데, 근래에 고작 한달 다닌 유치원에서도 담임 선생님께서 침을 튀긴다.

먼 훗날, '우리 연서는 어렸을때 침 좀 튀겨지던 아이'라고 회고할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은 예전에 현진이가 7세반에 다닐때도, 현진이 담임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지켜본바로는 현진이가 참 바른친구라 생각했는데, 올해 연서 담임을 맡으면서 보니, 어머님이 집에서 아이들 교육을 정말 잘 시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느닷없이 훅 들어오는 칭찬에 당황했고, 그 말에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대체 이런 포즈는 어떻게 생각해내는건지 당황스럽다. (2015/3/22)


현진이 담임선생님과 상담할때, 

'현진이는 성격이 조금 무뚝뚝한 편이고, 동생은 애교가 굉장히 많은데, 현진이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동생이 독차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리니, '원래 첫째들은 태어났을때부터, 뭘 하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서 무뚝뚝한 편이고, 둘째들은 사랑받기 위해 생존본능으로 그렇게 하는거다.' 라고 하셨다.


생존본능..

그 말에 갑자기 마음에서 쿵~하는 느낌이 들었다.


현진이 태어났을때는 그 당시 함께 살았던 시어머니께서 어린 현진이를 돌봐주셨다.

어머니의 연세도 있고하여,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을때, 어머니는 '이렇게 갓난 애기를 불쌍해서 어떻게 어린이집에 맡기냐, 돌이라도 지나거든 보내자.' 하셨고, 어머니 덕분에 현진이는 세 살(만16개월)되던 해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현진이를 통해서 육아의 고됨을 톡톡히 맛 보시곤, 연서를 어린이집에 맡기겠다고 했을때는 소리없이 강하게 동의하셨다.

그래서 연서는 100일도 채 안된 갓난쟁이였을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고, 어린이집 조기교육을 받은 연서가 이후에도 쭈욱 어린이집 생활에 혹은 단체생활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선생님들은 모두 침을 튀기며 연서를 칭찬 해주셨다.


어린이집에서 2013년 4월 쯤으로 추정 (연서, 만12개월)


그 당시에 어린이집은 연서처럼 어린 아기는 처음이었고, 100일도 안된 뽀송뽀송한 아기를 반겨주셨다. 앞서 현진이때 이미 겪어본 선생님들이라서 모두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한두번은 귀엽다고 안아주고 관심보이셨겠지만, 각자 맡은 반 아이들이 있고, 아기 돌보는게 보통 힘든일이 아님을 알기에, 담임선생님도 말못하는 어린 연서를 더러는 방치하기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해주길 바라는것 자체가 이기적인 욕심일뿐이므로, 끔찍한 학대만 아니라면 뭐 그럭저럭 상식적인 범위내에서의 방치는 수긍할 수 있었다.

연서의 몸에 이상한 상처라든가 연서가 이상행동을 보인다거나 그런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갓난쟁이 연서를 어린이집에 맡기고도 안심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게 너무나 고마웠었다.

물론 나는 나대로 원장님과 선생님들께 성의표시도 종종 했었고, 2013년 10월에 이사나왔을때도 아이들 2명을 갑자기 빼내면 어린이집도 경제적으로 타격 있을것 같아서, 2014년 2월말 수료식 때까지 아이들을 계속해서 보냈었다. 아침 저녁 출퇴근하면서 아이들 등하원 시키기 위해 일부러 먼길을 돌아가면서까지 나름의 의리를 지켰었다.


어린이집에서 2013/11/01 (연서, 만19개월)


그런데, 2015년 1월에 보도된 인천 송도의 어린이집 아동학대 동영상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극히 일부의 경우 때문에 나머지 대다수의 무고한 보육교사들까지 싸잡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일은 무척이나 억울할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충격적이어서 뇌리에 깊게 박혀버렸다. 이후에도 가끔씩 터지는 어린이집 학대 동영상을 접할때마다,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우리 아이들도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특히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연서를 남의 손에 맡겨 키운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곤 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었고, 어찌되었든 그 어린이집 덕분에 나도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었기에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현진이 담임선생님이 우스개로 '생존본능' 운운하셨을때 '쿵~!' 했던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현진이와 달리 연서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는것은, 너무 일찍 어린이집 전선에 뛰어 든 연서가, 하루 온종일을 보내야하는 어린이집에서 사랑받기 위한 생존본능으로써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린이집 생활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 선생님들께 이쁨을 받았던게 아닐까..

지나친 확대해석일수도 있겠지만, 잘 버텨준 연서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물론, 단체생활을 잘해서 선생님들이 연서를 예뻐하는것만은 아닐것이다. 

분명 연서는 연서만의 은근한 매력이 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그린것 같아서 소장  (0) 2017.06.15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0) 2017.06.15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0) 2017.03.28
변화의 바람  (0) 2017.03.14
12월의 어느 2주  (0) 201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