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

고뇌하는 칭찬스티커

2016년 초, 11번가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장바구니 쿠폰을 적용하기 위해, 약간 부족한 금액을 채우려고, 값싼 '칭찬스티커'를 몇 장 사게 되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아이들한테 칭찬스티커를 활용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단지 쇼핑할인 더 받으려고, 칭찬스티커를 사면서, 이제부터 나도 좀 칭찬스티커로 아이들을 조련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칭찬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인기 캐릭터든 뭐든 그럴듯한 판 이미지를 구하려고 육아카페를 검색하다가, 어떤 게시물에 달린 어떤 이의 댓글에서, 칭찬스티커 같은 거 하지 말라며 언급한 '칭찬의 역효과' 방송을 검색하여서 시청하게 되었다.


EBS교육대기획 10부작 학교란 무엇인가 - 6부 칭찬의 역효과 <-- TV 즉시,다시보기 (2010/11/23 방영)


'미켈란젤로-아담의 창조'가 연상되어 찍어본 샷, 5/21

포스팅 내용과 관련이 없는 짤방임. 글이 너무 건조해서..


'칭찬의 역효과' 방송 내용을 요약하자면,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여 과도한 칭찬을 할 경우, 아이들이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 부정행위를 촉발하거나,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상 유지에 안주하려고 하거나, 칭찬스티커가 없을 때에는 야채주스를 먹지 않으려 하는 등등,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피타고라스의 정리' 만큼이나 흔히, 널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기본 상식과 같았는데, 우연한 계기로 얼떨결에 보게 된 40여분짜리 영상 '칭찬의 역효과' 때문에 내 기본 상식이 뒤집혔고, 내 가치관이 갑작스럽게 혼란스러워졌다. 평소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쓸데없이 영상의 내용이 나한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아무 비판 없이 참인 명제로 인식하고 있던 상태에서 허를 찔렸다.


01234

춤 추고 있는 연서 고래, 때와 장소로도 가려지지가 않는다. 5/28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칭찬은 뭐였던가 되짚어 보았다. 비교적 칭찬에 인색한 편이긴 했지만, "그럿츼!, 우와!, 잘했어!, 최고!" 등등. 

두 세마디의 단순명료한 표현들이었지만, 영상속 대다수의 부모들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러한 영혼없는 칭찬들이 아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되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뜨끔했다.


내가 이제까지 잘못했던 것이 무엇인가! 

앞으로 하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인가! 

이왕 산 칭찬스티커지만, 이 스티커로 아이들을 조련해도 되는 것인가! 하면 안되는 것인가! 

등등 고민이 되었다.. 그것이 작년 봄의 일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공동 책임자인 심슨군도 영상을 보게끔 했지만, 나만큼 뜨끔해 하지는 않았다.

어떤 결과에 대한 대가 보상이나 과도한 칭찬은 지양해야 될 것 같은데, 현진이가 시험에 합격하거나, 백점을 받았을때, 잘했다고 칭찬하며 굳이 '그 대가'임을 밝히면서, 맛있는것을 사준다거나 용돈을 주거나 하는 행동들을 여전히 한다.

"합격 했으니까 ~~~해줘야 겠네."

우리도 어렸을때 그렇게 커왔고, 그게 꼭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아서 별 말은 안하지만, '그러면 안되는거 아닐까?' 하는 작은 우려는 가지고 있다. 

달콤한 칭찬이었든 물질적인 보상이었든 대가나 보상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본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함에 있어서 조차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당연스럽게 바란다거나, 대가나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에는 당연히 해야할 일임에도 하지 않으려 든다면, 그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거 중구형, 메뉴판 그림이랑 차이가 너무 심한거 아니오? 3/18


'칭찬의 역효과' 내용 중, 아이들이 책 한권 읽을때마다 칭찬스티커를 지급하는 실험이 있었다.
아이들은 칭찬스티커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서, 글밥이 얼마 안되어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라서 경쟁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작년에 초등 1학년인 현진이에게서 그와 똑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학교 숙제에 '매일 큰 소리로 책 읽기'가 있었다.

하루동안 읽은 책이 3권 이면,
1. 책 제목 ~ 
3. 책 제목

이튿날 읽은 책이 5권 이면, 연번을 매겨서
4. 책 제목 ~ 
8. 책 제목

이런식으로 매일 매일 알림장에 기록하여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받고 칭찬스티커도 받았다. 
교실 뒤쪽 알림판 한쪽에는 누가 누가 책을 많이 읽었는지 100권 단위 상황판에 표시되었다.
책 읽기 숙제를 못했을 경우에는 벌칙으로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책을 한권이라도 읽어야 한다.

1학년 공개수업 참여때 찍은 동영상 캡쳐. 경주마된 현진. '16/9/28


나는 이미 '칭찬의 역효과'를 봐서, 어떤 역효과가 날런지 예측이 되었고, 그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책 많이 읽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
처음엔 현진이에게 좋은 말로 잘 타이르고,
"다른 친구들 신경 쓰지마! 많이 읽을 필요없어."
차차 거친말로 타이르다가,
"야~C 책 읽지마악!!!!!!"
소리치고 윽박질러도 소용 없었다.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인 초등 저학년 아이에게는, 선생님께 칭찬스티커를 한개라도 더 받기 위해, 권 수 늘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선, 글자 수 적은 책들 위주로, 빨리빨리 건성건성 읽는 현진이를 보면서, 칭찬의 역효과를 제대로 실감했다. 
게다가 책 읽기 숙제 때문에 밤10시~10시30분의 취침시간도 늘 불만이었다.

그러던 작년 7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같은 반 엄마들끼리 단체모임을 갖는다기에 참석했을때, 혹시 '칭찬의 역효과' 영상을 본 사람이 있는지 떠보았더니, 10여명 중 아무도 없었다. 
칭찬 스티커를 놓고 경쟁적으로 책 읽기 숙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운을 떼었을때, 나와 달리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들 이었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책을 안 읽는 아이인데, 책을 읽어서 좋다는 얘기였다. 책읽는 습관을 다져주는것 같다는 것이다.
현진이가 구몬학습지로 매일매일 공부하느라, 공부습관이 잡혀서 좋다는 나의 생각도 어쩌면 같은 종류의 착각일 수 있겠다.
실제로 책 읽는 습관으로 자리잡은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1년이 지난후의 현진이를 보면, 그것은 단지 1학년때의 미쎤일 뿐 이었다.

가을께 담임과 상담할때도, 현진이가 권수에만 연연해서 글밥 적은 책들 위주로만 읽고, 권수 늘리느라 늦게까지 책 읽다 잠자리에 드는것도 불만스럽다고 토로했을때, 담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년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게 좋다고 하셨다.

담임 혼자서 많은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솔하기 위해서, 독서 및 숙제와 학교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에 칭찬스티커를 활용하는것은 어느정도 이해되기는 하지만, '칭찬·독서의 역효과'를 직접 겪은 나는 칭찬스티커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러다가..

10년 넘게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재개발로 인해서 몇년간 이주해야되는 상황이었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강력주장해 분가해서 나왔다. 
아파트 완공되면 큰형님네가 어머니를 모시고 입주 하기로 얘기돼서, 그전까지만 우리집과 큰형님집 중간위치의 소형 아파트에서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 그게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어머니 혼자 잘 지내시는지 걱정은 되지만, 안부전화를 드릴 성격은 못되고 해서, '대리효도' 차원에서 작년 3월부터 초등 입학한 현진이를 시켜서 매일매일 방과후 집에 오는길에 키즈폰으로 할머니께 꼭 전화를 드리도록 시켜왔었다.
그런데, 작년 가을쯤 부터는 현진이가 할머니께 전화드리는것을 차츰 게을리 하더니 중단했다. 

전화수다에 취약한 나로서는 특별한 용건이 없는 전화통화, 더욱이 시어머니와의 전화통화는 너무 어색하고 부담스러운데, 현진이는 대리효도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안부는 걱정되어 고민 되던차, 
어느날 "친구들은 지갑도 있고, 용돈도 받아서 맛있는걸 사먹는다."고 현진이가 불만을 토로했을때 "그래??" 떠오른 것이 바로 '칭찬스티커' 였다.

그리하여 작년 12월부터 칭찬달력을 만들어, 칭찬스티커 붙이기를 시작하였다.

칭찬달력에 칭찬스티커 붙이기 인증샷.. 4/11


플러스 칭찬과 마이너스 칭찬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제시하고, 마이너스 칭찬을 상쇄하고도 하루 3개 이상의 칭찬을 득한 날짜에 칭찬스티커를 붙이고, 1주일간 칭찬스티커가 4개 이상이면 그 주에는 용돈으로 1천원을 주는 것이다.


즉, 용돈을 공짜로 줄 수 없다.

네 용돈은 네가 직접 벌어서 써라.

그리고 용돈기입장을 작성 · 관리하게끔 시켰더니, 책으로 배운 덧셈 뺄셈을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었고, 자기 관리와 경제 관념도 시나브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된다.


또한 매일 오후 현진이에게서 전화를 받는 시어머니는 현진이를 대견해하시고, 동네 어르신들도 손녀가 기특하다고 칭찬이 자자하신다고 한다.


비록, 현진이가 자발적으로 하는게 아닌, 내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긴해도, 백일때부터 15개월까지 할머니께서 자기를 키워주셨으니, 현진이도 그 정도는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어머니께 받은 육아도움은....내 딸이 대신 갚고 있다.


몇몇 고치고 싶은 습관들을 조련해보고자 했으나, 손톱 깨무는 버릇도 1회성 성과에 그쳤고, 자매간의 우애와 정리정돈의 습관은 여전히 요원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아빠한테 항상 반말투로 말하던것,

특히나 전화통화 할 때는 더욱 심했는데, 칭찬스티커로 조련하면서부터, 현진이는 엄마 아빠한테 존댓말 하는것이 완전히 습관으로 자리 잡혔고, 덩달아 연서도 언니따라 존댓말을 쓰더니 몸에 배었다.


칭찬스티커에 대해 갈팡질팡하던 내가, 중단 된 대리효도를 재개하기 위해 시작한 칭찬스티커 이었지만,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한테 높임말을 쓰는 것이다.


부모자식간에 친구같은 사이라서 반말투로 대화하는 것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는 당사자로서 혹은 제3자로서 듣기에 거슬릴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반말투를 고치고 싶었지만, 본보기를 보여야할 부부간에 이미 반말로 대화하니 고치기 어려웠는데, 칭찬스티커 덕분에 해결되었다.


칭찬할때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말했다.  7/31


칭찬의 역효과... 

오히려 독이 되는 칭찬은 아이를 망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칭찬이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노력하려는 의지,
잘하기 위해서 애쓰는 과정, 새로운 도전과 용기,
더 나은 가치 추구.. 등등에 대해서 칭찬해 준다면 분명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독이 되는 칭찬과 약이 되는 칭찬의 경계가 매번 뚜렷한것은 아니기에.., 
또한 '적절히 적당한, 칭찬의 기술'도 어렵기에,
칭찬에 대한 나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3월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해서 글 작성을 완료하지 못하고, 

4월에 인증샷을 찍고 글 작성을 완료하려다 못하고, 

6월에 칭찬달력을 업로드하고 글 작성 완료하려다 못하고,

7월에 최종적으로 완료하려고 월말에 고군분투하였으나 실패하고,

8월에 드듸어 완료. 

고뇌하는 글 작성 완료.

별건 아니지만, 필요하신분 받으시길 --> 칭찬달력.xlsx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8 선택의 이유  (0) 2017.10.29
구몬 평가리포트의 의문점  (4) 2017.08.09
구몬 수학 인정테스트 결과 분석 (2017)  (2) 2017.07.06
명품칠성보드  (0) 2017.06.22
구몬수학 인정테스트  (9) 2017.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