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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바람직한 결론

나이가 들면 당연히 결혼 해야 되고, 결혼 했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

에서,

반드시 결혼 해야되는건 아니다.

로,

인식이 바뀐건 불과 20년도 채 안될 듯 하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부터 '독신주의자'가 있었지만, 이제는 '-주의'를 붙힐 필요조차 없어졌다.

굳이 신념따위 없더라도,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된 경우가 흔해졌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반드시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

로까지 확대되었다.

결혼과 출산은 전적으로 당사자 본인들 선택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출산의 경우에는 세대간 인식격차가 극명해서 본인들 선택의지와는 무관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도 적령기에 결혼 했지만, 아이는 필요 없다.는 생각에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함께사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결국 결혼 7년만에 뒤늦게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녀석이 벌써 이렇게 많이 컸다. 이름은 현진.

2016.07.07


나는 이미 다 큰 어른이었고 젊었기에 결혼 후 1년이 가고 5년이 가도 세월가는게 잘 안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서 한해 다르게 두해 다르게 쑥쑥 커가는것을 목격하니 세월가는게 실감났다.

어쨌든, 아이를 안 낳으려고 버티던 나도 결국에 아이를 낳았고, 이왕 실패한거 둘째까지 낳았다.

2014.04.09 사진


둘째를 낳을지 말지 고민이 정말 많았다. 

우리가 좀 더 젊었으면 모를까 뒤늦게 또하나 낳아서, 은퇴할 나이즈음에 아이들 학비나 걱정하게 생겼으니, 경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기에 몹시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아이가 하나라면 혼자서 외롭게 크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에, 우리가 죽고 나면 의지할 데 없고, 기타등등등. 그렇기때문에 아이는 최소 둘은 있어야될 것 같았다.

그러한 고민끝에 3년 터울의 둘째를 낳았다.

그 녀석도 벌써 이만큼 컸다. 이름은 연서.


2016.04.24 사진


두 아이는 생긴것도 성격도 아주 많이 달랐다.

8살 현진이는 비교적 예쁜 편이고, 아빠 닮아 키가 크고 벌써부터 회를 엄청 잘 먹으며, 엄마 닮아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성격이다. 소심하고 마음이 너무 여려서 눈물이 많지만, 은근과 끈기가 있다. 
엄청 똑똑하진 않아도, 곁에서 조금 신경써주면 공부도 꾸준하게 열심히 할 스타일이다. 

5살 연서는 비교적 못생긴 편이지만, 하는 행동과 말이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다. 또래 친구들보다 작고, 같은 개월수때의 현진이보다 7cm 작다.
키 큰 아빠의 유전자를 미처 못 챙겼는지, 지금처럼만 성장했다간 160cm도 빠듯해 보인다. 

잔머리만 있고 공부는 죽어라 안할 스타일이다.

벌써부터 외모쪽에 관심을 보이며 여우짓을 하는데, 크면 공부가 웬 말이냐 싶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생긴것도 성격도 이렇게나 다르지만, 두 아이가 함께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때때로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적어도 둘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5.01.01 사진


그런데, 그것은 나의 뇌구조상 25%이고, 아이는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70%, 끝까지 버텨서 애를 안 낳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5% 차지한다.


대부분의 둘째가 그렇듯이 첫째한테 보고 배우는게 있어서인지 발달이 빠른 편이다. 그래선지, 연서는 모든것을 현진이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 

하지만 3살 터울을 무시 못하기에 둘은 상대가 되지 않을때가 많다. 그럴때마다 현진이는 연서가 자기만큼 못한다고 답답해하고 짜증을 낸다. 

동생은 아직 어려서 언니 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할 수록, 언니는 동생한테 늘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강요로 받아들인다.


2015.10.25 - 대전오월드 플라워랜드


1년전 사진이지만 둘의 관계가 매우 잘 나타난다.

좀 더 표정을 자세히 보자면,


연서때문에 약이 오른 현진이는 짜증내고, 연서는 그런 현진이를 한심하다는 듯 째려본다.


현진이는 사사건건 연서 때문에 약이 올라서 쉽게 짜증내고 큰소리치고 울고불고 하는 일이 잦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가끔씩 한다.


형제없이 혼자 크는 아이는 이기적이라 생각했는데, 둘이 컸어도 현진이는 충분히 이기적이었다.

사소한 일에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일도 많았다. 우는게 질색인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게 울 일이냐? 어?' 라는 말을 자주했더니, 어느날 울고 있는 현진이에게 연서가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게 울 일이야?' 라며 깐죽거렸다.


몇달전, 

애를 둘 낳을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와서 든다고 심슨군에게 말하니,

애초에 둘째를 내심 반대했었다던 심슨군은, 직장 상사중 3명이나 스무살 넘은 아들 하나씩만 있는데, 하나만 낳고 더 안 낳은 걸 지금은 3명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다들 공통적으로 아들이 너무 자기 밖에는 모르고, 확실히 아들은 키우는 재미가 없다면서 딸 둘 키우고 있는 심슨군을 부러워 한다는 것이다.



젊을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더니,

나 역시도, 딸 둘 키우고 있는 재미 보다도,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훨씬 많이 한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기도 빠듯한데

여아옷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옷 챙겨 입히고, 머리 빗겨 묶어줘야하고, 구두를 신을까 운동화를 신을까 지들이 골라야 되고.., 

기본적으로 준비시간이 더 걸렸고, 회사지각을 밥먹듯 하는것도 짜증났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은 손 많이 가는 딸 보단, 

무던한 아들을 키우는게 훨씬 수월하지 싶었다.

또한, 내가 여자로 살면서 직접 느꼈던, 귀찮음, 번거로움, 성가심, 불편, 불만, 불안, 불평등 등등등. 이 땅에선 남자로 태어나는게 훨씬 나을것 같았다.

하지만, 자식의 성별이 내 뜻대로 되는게 아니기에, 딸만 둘인것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 밥 챙겨 먹이고, 양치 도와주고, 숙제 봐주고, 공부 봐주고, 요리와 청소 빨래 등등의 집안일과, 이것저것 매일 매일 해야만 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귀찮고 피곤했다.

분가전에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마음 힘든 것보다 몸 힘든게 나아서 분가했다.

심슨군은 내가 부득부득 주장해 분가해서 자초한 고생이니, 감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도 나름, 야근이 잦고 매일 KTX로 출퇴근 하느라 힘들텐데, 주말이면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가끔씩 요리와 설거지 집안청소도 도와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시간여유 있을때나 마음 내킬때 일조하는 정도이다.

그외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어 스트레스 받으며 산게 벌써 3년째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퇴근해도, 집으로 다시 출근해서 집안일 하는것이 한국에서의 워킹맘의 현실이다.

뭐 어느나라는 별반 다르냐며, 대다수의 남자들처럼 심슨군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안 낳겠다고 버티던거 왜 끝까지 못 버텨냈는지에 대한 후회가 5% 차지하고, 아이는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70% 차지한다.
한명이었더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다.


2015.10.25 - 대전오월드 플라워랜드


아이가 둘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25% 차지하는것은, 순전히 낙장불입에 입각해서,

이미 내게로 와서 꽃이 되고 의미가 된 두 아이중 어느 한명이라도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면, 아이는 하나로도 정말 충분하다.


물론, 서로 다른 두아이에게 받는 감흥이 다르다.

예쁘고 똑똑한 현진이와 주고 받는 교감과, 살갑고 애교 많은 연서와 주고 받는 교감이 전혀 다르다.

두 아이의 장점과 단점이 각각 다르고 성격이 달라서 발생하는 인생의 에피소드가 다채롭다.


하지만,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하나만 낳아서 나도 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나마 조금 더 여유롭게 살고 싶다.

지금도 주말이면 아무도,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제발 나 혼자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2015.10.10 - 광명동굴


그런데.., 

피곤한 일상에 찌들어 자꾸 잊게 되는데,

내게 있어서 아이들은 소중한 직장 같은 존재이다.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매달 정기적으로 받는 월급(비록 통장에 잠깐 찍혔다가 금세 빠져 나갈지언정) 보다도, 

매일 아침마다 집에서 나와 회사에 출근해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쳇바퀴의 연속이지만,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바쁘게 산다는것이 월급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는것 같다.

 

은퇴후에 남아도는 시간을 마땅히 보낼 방법을 찾지 못해서 무료해진 은퇴자들 보다는, 회사일로 받는 스트레스와 업무 피로에 가끔은 회사를 때려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들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회사에 묶여 있는 상태가,

정신건강에도 육체건강에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성장 시기에 맞게 그때 그때 끊임없이 발생하는 여러가지 이벤트들. 생일, 재롱, 발표회, 소풍, 어린이집, 유치원, 사춘기, 초·중·고 입학과 졸업, 학부모참여, 대입, 취업, 결혼, 출산 등등등.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 많은 이벤트와 인간관계.


나에게 아이가 한명도 없었다면, 내 시간이 좀 더 여유롭고 몸은 편했겠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각종 이벤트들도 마찬가지로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몇 년 후면 아이들도 집 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해서 밖으로만 돌 나이가 될 것이고,

언젠가 각자 제 인생 찾아서 떠나는 시기가 오면,

지금 이렇게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이고, 내 손길이 절실히 필요해서, 할 일이 태산인 지금의 이 시기가 그리워질게 뻔하다.


2015.10.10 - 일산 아쿠아플라넷


자녀 한명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3~4억 이라고 했을때, 예전에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 정도 들 것 같다.


그렇다고 아이를 안 낳는다고해서 그 비용이 전부 세이브 되는것도 아닐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자녀양육에 대한 비용부담이 없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위한 투자와 여가, 유흥 명목으로 더 많은 소비지출을 했을테니 말이다.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지출의 규모와 저축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고 진지해졌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게 아니고, 저축할 돈을 미리 떼어 놓고, 남은 돈으로 쓰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목돈은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차근차근 준비하되, 그 돈을 가계의 저축 자산이 아닌, 처음부터 아이들 몫으로 완전 분리를 해버리면, 그 돈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돈이 된다.
그러면 자녀 양육 때문에 나의 노후자금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은 안들것 같다.
명절이나 기념일에 친인척한테 받은 아이들 용돈만 지들 통장에 모아줘도 1년이면 몇십만원이다.



이제와서 구구절절 긴긴 글 정리를 해보자면;


아이가 0명?

*앞서 언급한대로,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맞춰 발생되는 다양한 이벤트들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내 블로그에 아이들의 이야기로 도배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관련해서 부부간에 대화할꺼리가 끊임없이 샘 솟는다. 그런데 아이가 없었다면, 대화의 양과 질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도, 모두 차차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이가 1명?

*부모의 사랑을 몰빵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것이다.

*둘 보단 하나가 양육비 부담이 훨씬 적으니, 아이에게도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아이 1명이 최선인것 같다.


아이가 2명?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며 걸핏하면 싸운다.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심하게 궁핍해진다.

*아이들 뒷바라지가 힘들다. 1명일때 1kg 힘들다면, 2명은 2kg 힘든게 아니라 3~4kg 힘들다.

*부모도 미성숙한 사람인지라, 자녀가 여럿이면 그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녀석이 있다. 그래서 '편애'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편애와 무관한 일인데도, 각자 서로 '불공평'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첫째에게는 첫째만의 프리미엄이 있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대부분, 아이에게 이것저것 되도록 많은 경험들을 시켜주기 위해서, 첫째한테는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는다.

그게 다 부질없는 짓이란걸 깨닫거나, 부모가 점차 게을러지거나 하면, 둘째에게서 특별한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 한, 둘째에게 쏟아 붓는 돈과 시간과 정성은 첫째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


결론적으로, 부부에게 아이는 필요하다.

사람들마다 처한 여건과 형편이 제각각이라서 모두에게 적용될 순 없겠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100세 시대를 맞는 요즘,

임신출산 적령기를 포함한 청년기가 길어진게 아닌, 노년기만 더 길어졌는데,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웬수같은 자식일지언정, 그런 자식 조차도 한명 없다면, 길고 긴 노후가 쓸쓸할 것 같다.


내가 비혼(非婚)이나 무자녀 상태로 늙었다면,
막연하게 '독거노인'을 상상할게 아니라,
내 엄마 또는 내 아빠를 떠올려보면 될것 같다.
아빠가 엄마도 없는 상태로 혼자 늙어가신다?
엄마가 나와 내 형제가 애초부터 없었던 상태로 혼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신다?
그 쓸쓸한 노후가 곧 나의 노후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 젊고 혈기왕성해서 바쁘고 즐겁게 살지언정 말이다.

내가 내 부모를 사랑하는것의 몇십~몇백배 이상으로 내 자식들을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
훗날 내 자식들도 나와 똑같이 그러할테고 말이다.
내리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므로...
어찌되었든간에, 내가 죽을때까지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식이 둘씩이나 존재한다는 것은 큰 축복인것 같다.

작금의 현실은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고, 수시로 머리뚜껑이 열렸다 닫힐지라도, 결론은 그렇게 내야 바람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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