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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층간소음의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피가해자

다층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구조라면 우리는 누구나 층간소음의 피해자 이거나 층간소음의 가해자 이거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층간소음은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지만, 간혹 아래에서 위로 전달되거나 대각선으로도 전달되는등 구조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하거나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윗층이 너무 시끄러워서 윗집에 올라갔는데 그집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례, 

아이들 맘껏 뛰어놀게 하려고 1층으로 이사했는데, 그로인해 2층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례,

꼭대기층으로 이사했는데 위에서 뛰는 소리가 나서 바로 옥상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더라는 사례, 

혼자 TV보고 있는데 아랫집에서 쫓아와서 아이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게 뛰어다니냐고 했다는 사례, 등등등


작년쯤, 층간소음 스트레스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정말로 다양한 사례들을 인터넷 카페에서 읽은적이 있었다.

윗집의 층간소음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의 사례들속에 나오는 윗집 사람들은 너무나 몰상식하고 뻔뻔하다.

반면, 예민한 아랫집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랫집에 이사올까봐 걱정도 된다. 

또한, 애 키우는 집에서 어린 아이들이 뛰는것을 부모가 일일히 제어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는 2013년 10월에 지금 살고 있는 15층짜리 아파트 10층으로 이사를 왔다.

결혼직후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 층간소음 따위는 신경쓸 필요도 없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 흥청망청 뛰어놀며 생활하다가 분가하면서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다.

이사 온 이튿날 토요일 저녁에 우리 엘리베이터 라인에 이사떡을 돌렸다.

제일 마지막 순서로 아랫층에는 특별히 다른것도 더 챙겨서 아이들 모두 데리고 내려갔다. 

윗층에 새로 이사왔는데, 집에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죄송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들만 둘인 친구는 과일들고 아랫층에 인사갔을때 과일조차 안받더라는 얘길 들은적 있어서 내심 걱정됐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만 살고 계신 듯 했는데 너무나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셔서 안심했었다.


그후 어느 수요일 밤, 교회에 다녀오셨다는 아랫층 할머니 할아버지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었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뛰어 놀아서 죄송해요. 라고 인사를 드리는데,

'우린 더 좋다. 적적한데 위에서 뛰고 그러면 사람 사는것 같고 더 좋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설령, 빈말이라도 그렇게까지 살갑게 말씀해주신다는게 너무나 고맙고 감동이었다.


이사 온 이듬해 2014년 5~6월 이었던것 같다. 

SK주유소 3천포인트특권때 교환했던 주방세제세트를 아랫층에 선물로 가져다 드리면서, 

심슨군에게 연서(당시3세)가 거실에서 최대한 쿵쾅거리고 뛰어놀게끔 유도하라고 시켰었다.

이사온 후로는 '뛰지마!!'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의 뜀박본능은 조절이 힘들다. 

그래서 연서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아랫층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내가 직접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아랫층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연서가 뛰어다니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내 새끼가 뛰는 소리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작은 북이 울리는것처럼 '동동동' 거리는 소리가 살짝 귀엽기까지 했다.

연서가 움직이는 이동경로가 가히 짐작되는 그런 소리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도옹동동 울리듯 들려왔다.

사실, 내가 정말 궁금했던것은 우리 윗집에서는 성인남자가 일부러 발뒤꿈치로 찍어 누르는 것처럼 쿵.쿵.쿵. 하는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서, 우리집의 층간소음은 아랫집에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했었다.

물론, 3살 꼬마의 발소리와 성인의 발소리를 단순 비교하는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말이다.


기본 취침시간이 새벽1시~1시반인 심슨군이, 윗집은 새벽에도 매일밤 거실에서 운동회가 열린다고 했을때 처음엔 뭔소린지 잘 몰랐었다. 이사오고 몇달이 지나고 보니 정말로 윗집은 늦은 밤에도 거실에서 우당탕탕 한다.


윗집과의 왕래는 없었지만, 지금껏 3년여 살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된 것들로 미루어,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올해 중1학년 중3학년이 되는 남매 이렇게 4인 가구이다. 가정주부인듯한 윗집 여자는 인상이 좋고,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집 가까운데 사신다는 윗집 친정부모님을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기도 했다.


처음엔 시끄럽게 쿵쾅거리는 소리에 '남매가 어느정도 다 컸는데도 저렇게 시끄러운건가?' 의아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윗집 여자가 친정 조카(현진이 또래의 남자아이)를 종종 돌봐준다는 이야기를 제3자에게 전해 듣고, '그 아이가 저렇게 시끄럽게 노는건가?' 싶었다. '혹시 친정아버지께서 저렇게 쿵쾅거리시나?' 하는 생각도 해본적 있다.

그런데 '친정조카가 또 놀라왔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밤12시 무렵의 쿵쾅거림은 정말로 심슨군의 말대로 '운동회'다. 방과후 학원 갔다가 돌아온 10대 아이들과 밤늦게 퇴근한 아빠가 모여서 본격적으로 한바탕 놀아보는 타임...으로밖에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평상시에도 일부러 발꿈치로 찍는것처럼 쿵!쿵! 거리는 소리는 기본이고, 우당탕탕 쿵쾅쿵쾅 장난치고 뛰는듯한 소리가 밤늦게까지 날때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에 일상생활 하면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어느정도 이해한다. 이해 못하면 단독주택에 살아야 하는것이고 말이다.

우리집 역시도 아이들은 차치하고, 어른인 우리도 매번 신경써서 조심스럽게 다니는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랫집에 쿵쿵거리는 소음을 제공할런지 모르겠다.

이 아파트가 구조적으로 층간소음에 취약해서 그냥 걷는건데도 저렇게 쿵쿵쿵 찍는듯한 소리가 나는건지도 궁금했다. 
언제한번 윗집 여자를 만나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한적도 있었지만, 서로 활동시간이 달라서인지 엘리베이터에서 얼굴 보는것도 두세달에 한번 될까 말까해서 말을 꺼내본적이 없다. 그렇다고 윗집에 찾아가서 얼굴 붉히며 말 꺼내기도 참으로 껄끄러운 일이라서 주저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앞집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때, 우리는 윗집에서 발등으로 찍는것처럼 쿵.쿵.쿵. 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앞집도 그런소리가 나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윗집의 꼬마가 너무 시끄럽게 뛰어다녀서 몇번 쫓아올라가서 항의했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 생각에 순간 뜨끔했다. 앞집의 윗집은 6~70대 부부와, 연서보다 한두살 많은 외손자가 상주하다시피 드나들고 있었는데, 앞집 아주머니는 그 녀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액션 자체가 달라서 그집은 소음의 강도가 좀 쎘는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우리 아랫집 어르신들이 유난히 더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분들이셔서 정말로 운이 좋았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수시로 뛰어다니고, 장난감을 던지고 떨어뜨리고, 장난치고, 넘어지고, 쿵쿵 뛰면서 율동을 따라하고(매트를 깔아주긴 하지만), 뛰어 노는 아이들 때문에 양심에 찔리고 번번히 죄송하기도 해서, 최소한의 할 도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사온 후부터 지금껏 틈틈이 과일이라든가 맛난 먹거리가 생길때면 아래층에 가져다 드리곤 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항상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서 아이들 얼굴을 보여드렸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애기들~' 하시며 아이들을 무척이나 예뻐해주셨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 아랫층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지금은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

얼마전 출근하는데 사다리차가 우리 라인에 걸려있는데 얼핏보니 우리집 근처였다.

'으아아악!! 일,이,삼,사,오,륙,칠,팔....8층! 휴우우우~~~' 9층 할머니께서 이사가시는줄 알고 깜짝 놀랐었다.

할머니께서 아들내외 집으로 들어가시거나 다른데로 이사가시고, 까칠한 사람들이 이사올까봐 늘 걱정이다.


지금은 아랫층에 너무 좋으신 분이 살고 계시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도 한없이 마음이 편한것은 아니다.

이제껏 아랫층 어르신이 싫은 소리 한번 하신적 없으신것은, 
정말로 예전에 말씀하셨던것처럼 정적보다는 차라리 사람사는 소리가 나은건지, 
아니면 어느정도 이해되는 생활소음 수준인건지, 
아니면 싫긴하지만 많이 참고 배려해주시는건지, 
어쩐건지 우리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랫층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윗집도 기본적으로 그런 염려를 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과연 그럴까? 나는 적어도 아랫집에 죄송한 마음은 갖고 살고 있다는 의사표시는 꾸준히 하고 살았지만, 우리 윗집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은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윗집은 층간소음 가해자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것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그렇지않고서야 자정 넘은 시간까지 우당탕 거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간에 우리도 아랫층에 피해를 주고 있음을 잘 알기에, 나 역시도 윗집의 가해에 대해서 어느정도 참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뭐 그런대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훗날 아랫층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오게되고 우리집이 시끄럽다고 항의를 한다면, 나 역시도 지금껏 쌓아왔던 윗집에 대한 불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6월9일. 아침 목욕후 어린이집 가기전 머리 말릴 겸.이라는 변명을 대고, 훌라후프~로 층간소음 일으키기.


위 사진은 위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단순 짤방.


6월16일. 원장님께서 문자로 보내주신 뮤지컬 관람 단체 사진.

우측에서 2번째 주황색 운동화의 연서. 단발컷이 내눈에만 청순하게 보이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