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엔 김밥

2016.10.04 11:34 [ 일상 ]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9월 29일 연서의 가을 소풍이 있었다. (우측끝)


소풍도시락으로 김밥 1줄만 있으면 되는데,

비록 1줄을 만들어도 기본 재료는 모두 필요해서

소풍도시락은 만드는 것보다 김밥집에서 사는게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이고 편리적이다.


잘 알면서도,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이 들어서

이제껏 아이들 소풍 때 마다, 없는 솜씨에도

성의랍시고 꾸역 꾸역 만들어서 보냈다.


선생님들 도시락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일괄적으로 준비하는건지 어쩐건지 잘 모르겠지만,

반 아이들이 여럿인데, 그 중에 한 두 명은 담임쌤 도시락까지 챙겨오지 않을까?

서너명이 챙겨온다면 그것도 처치곤란하겠지만, 

아무도 안챙겨온다면 그것도 왠지 선생님의 체면이 구겨질 듯 싶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워킹맘이라서 매번 늦게 하원시키는게 미안해서,

항상 선생님 도시락도 챙겨서 보내곤 했다.

이왕 만든김에, 가끔은 경비아저씨께도 드리고,

아랫층 할머니께도 김밥을 가져다 드렸다.


타고난 손 맛과 손 재주는 없지만,

출근하기도 바쁜데, 시간내서 직접 만든 성의.

오로지 그 가치 하나 내세웠는데,

그 가치가 귀찮음 앞에 결국 무릎 꿇었다.


우리동네에는 아주 맛있는 꼬마김밥집이 있다.

속재료는 밥과 단무지,당근,계란만 들어있다.

보통김밥의 1/2 정도 길이에, 굵기도 비교적 얇다.

칼로 썰지 않아서 통채로 잡고 베어먹어야한다.

1인분 한팩에 6줄이 들어있는데 3천원이다.

아이들은 2~3줄이면 충분히 한끼양이 된다.

우리 가족 모두 맛있게 먹는 김밥집이다.


연서 소풍 즈음,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김밥을 싸 줄까, 사 줄까?"

현진이는, 김밥을 싸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어야돼서 싫다며, 사는것을 강력주장하였다.

연서도 덩달아서 김밥을 사달라고 했다.

아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밖에,,


그런데,

만들기 귀찮아서, 띡~하고 돈 내고 산 김밥인데,

선생님것도 사서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성의껏 만든 김밥이라고 오해할까봐 미안하고,

오해 않도록 미리 밝히는것도 모양새가 우습고,

안 보내자니, 할 도리를 안한것 같아 갈등되고..,

결국 김밥을 넉넉하게 사서, 과일 몇가지와 함께

도시락에 싸서 선생님의 점심도 챙겨서 보냈다.


정성껏 준비해주신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는 감사의 편지가 결국 내 양심을 찔렀다.



빈도시락을 소풍당일이 아닌 다음날 주신다더니,

빈도시락통 2개에 과자와 사탕등 몇가지 간식들과

계피생강차 삼각티백 한봉지를 채워 보내주셨다.

전날, 감사의 인사 편지에도 양심이 찔릴 판인데,

이튿날, 답례까지 받으니 양심이 찢어진다.


카페에는 아이들의 소풍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아이들의 도시락은 사진상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팔뚝만한 크기(처럼 보이는)의 시커먼 김밥을 

입안으로 우겨넣는 장면이 찍혔다.

'연서 김밥이 제일 먹음직스럽다'는 

친구엄마의 댓글에 또다시 제 발이 저린다.


퇴근할때까지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 쌤에게는 

너무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기 때문에,

명절이나 기념일, 소풍등은 꼬박꼬박 챙긴다.

하지만, 초등쌤한테는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여, 곧 있을 현진이의 초등학교 소풍에는 

부담없이 현진이 도시락만 사서 보낼 생각이다.


가치고 나발이고, 귀찮은게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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