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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나, 임신했어요.

지난 2002년 12월에 결혼해서 이제 결혼한지 만6년도 더 지났습니다.

기축년 올해 나이 서른 다섯인데, 현재 저는 임신상태입니다. 

뱃속의 아이는 약 11주 정도 되었으며, 이 녀석은 10월 20일경에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라 합니다.


결혼후 한동안은 주말부부를 핑계로 아이낳기를 미루었는데, 

매일부부로 바뀐 이후 어머니의 압박은 날로 거세어졌습니다.

당신 자신도 손주를 애타게 기다리셨지만,

사람들을 만날때면, 늘 셋째며느리 임신소식을 묻기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오셨다고 합니다.

저역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애는 언제 갖냐는 '걱정'을 들어야만 했으나,

저는 애 없이 사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습니다.


물론, 애 없이 사는게 뭐가 어떠냐..는 생각은 요즘 젊은것들의 생각이고,

나이드신 어머니께는 그런 생각이 통할리 만무하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자니 부담스럽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만, 어차피 낳을거라면 한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낳았어야 했다는 후회는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마침내 참다못한 어머니께서 저를 끌고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으셨습니다.

일명 '애 생기는 약'

처음에, 어머니께서 한의원에 가자는 말씀을 꺼내셨을때, 저는 순간 기분이 울컥했습니다.

애가 안생기는것은 애 낳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애 가지려는 노력을 안해서 그런것 일 뿐인데,

내 몸 어디가 잘못돼서 애가 안 생기는것으로 생각하시고 한의원엘 가든 병원을 가든 하자셨습니다. 

도움의 눈길을 심슨군에게 보냈으나, 어머니 말씀대로 그냥 가서 약을 지어오자고 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못해 한의원에 다녀오고나서 부쩍 우울해하던 나를 달래주기 위해서, 

그날 저녁 심슨군은 보쌈집에서 소주1잔을 제안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말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아저씨도 애가 있었으면 좋겠냐? 애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나?"

"글쎄..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에 심슨군과 나는(특히 강력하게 나는) '결혼해서 애 없이도 얼마든지 산다'는 주의 였습니다.

결혼 전, 나는 애 낳는것은 정말 싫긴하지만,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것은 나쁘지 않을것같다고 말했었고,

심슨군은 차라리 애가 없으면 없었지 입양은 절대 안한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우리는 서로 아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심슨군은 내가 애 가지는것을 끔직하게 싫어하는것을 잘 알고 있었을테고,

나는 심슨군이 아이가 생기는것을 크게 바라는것 같지는 않다고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습니다.


내가 애를 가지는것을 끔직하게 싫었던 이유들은;

[1] 약간의 책임질일도 부담스러워 하고, 뜻대로 안되면 무척이나 버거워하며 감당못해 쩔쩔매는 사람임을 잘 알기 때문에, 책임지고 내 아이를 키우는것에 대해서 크게 부담을 느껴왔습니다.

[2] 자기혐오가 남달리 발달했기에, 세상에 나 같은 사람(분신)이 또 있다는게 싫었습니다.

[3] 이기적인 성격이라, 아이로 인해서 내 생활의 패턴이 많이 바뀔거라는것에 대해서 불만이었습니다.

[4] 천성이 무책임한 사람이라, 언제 어느때라도 지금의 이 자리에서 도망치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 자유로운 상태이고 싶었습니다.

[5] 아이가 무조건적으로 울고 보챌때, 내가 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고민스러웠습니다.

[6] 처절한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게 겁이 났습니다.

[7] 모성애는 본능이라고 하지만, 내게 그 모성본능이라는게 어느정도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과연, 고슴도치의 가시마냥 까칠한 내 성격에도 제 새끼는 마냥 이쁠까..정녕?



어찌되었든,

애 생기는 약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노력과 운이 따라주어서 결국 아이가 생겼습니다.

주위의 많은 분들께서 축하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거봐라.. 네가 몸이 차갑기 때문에, 그동안 애가 안생긴게지."

으아 억울.


솔직한 제 심정으로는, 아이가 생겨서 뛸듯이 기쁜..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뱃속에 3센치크기의 2등신의 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는것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입덧이 심한편은 아니지만, 속이 거북하고 나른하고 졸리고 하는 기분들이 상쾌하지 않은것은 사실이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뱃속의 아이가 아무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무사히 태어나주기를 바랄 뿐 입니다.


제가 지금 임신중이라는 소식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지만,

제 홈페이지를 수시로-줄기차게 방문해주시는 파란바람님外 5367명의 이웃분들께서도

함께 기뻐해주실것으로 생각되어 이 글을 공지로 띄웁니다..



그나저나,

오늘이 4월1일 만우절 이네요..

훗!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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