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스킨

2008.07.18 21:03 [ 기억 저편의 것들/꺼져닷컴 공지 ]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2004년도 겨울,
홈페이지에 일기좀 써보려했던 아주 작은 계기는,
엉뚱하게도 일기장스킨의 제작으로 빠지게 되었고,
지금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분명, 스킨작업이 신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지몽매했던 php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스킨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점점 내가 원하는 형태로 완성돼가는게 너무나 뿌듯했었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 또한 즐거웠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저런일로 마음둘곳 없어 방황하던 시기에, 스킨제작에 몰두하면서 다른 골치아픈 문제들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제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당시 꺼져스킨은 저에게 성취감과 흥미와 재미,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정신적 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차 꺼져스킨이 제게 준것들보다,
제게서 빼앗는 것들이 더 많아지면서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기본조차도 모르던 실력으로 흥미와 의욕만 가지고 덤비다보니, 전문 프로그래머의 몇십배에 해당하는 시간과 공을 들여도 진척은 더디었고 완성도는 떨어져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스킨 작업에 빼앗겼던 시간과 신경때문에 정작 내가 해야할 일에 지장을 주는게 잦아졌고, 정작 내가 신경써야할 것들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스킨에 대해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쌓여갔고, 나의 성의에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대할때면 피로는 어느정도 보람으로 상쇄되었지만, 간혹 무례하거나 무심한 사람들은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었지만 뭔가 원칙에 어긋나는것 같아서, 개인적 감정을 억누르며 질문에 답하고나면, 빼앗긴 시간은 시간대로 아깝고 기분은 기분대로 상해서 '도대체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회의와 함께 '애초에 스킨을 만든 내가 잘못'이라는 자책은 '나, 돌아갈래'의 후회를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2005년 11월 2일2006년 2월 15일에 쓴 글을 보니 그 무렵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랬음에도, 2006년 2월. 올뉴꺼져다이어리를 위한 물밑작업을 마친 상태였고, 2006년 3월. 홈페이지까지 닫아가며 본격적인 스킨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구상했던 모든 기능들을 구현해서 완벽(결코 불가능한 완벽)하게 스킨을 새로이 만들고나서 스킨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제로보드4에 트랙백을 넣고, 태그를 넣고, RSS를 공급하고, 안티스팸을 하고, 위지윅에디터를 달고, 게시물들을 일괄관리하고, 댓글을 수정하고, 멀티업로드를 하고, 달력과 연동하고, 언어팩을 지원하는 등등의 기능들을 꺼져스킨에 담으려고 수많은 시도를 해보면서 이리저리 고민하고 안간힘을 쓰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에 몰두한지 석달이 다 되어갈즈음에 그러한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지원하고, 그보다 더 훌륭한 기능들을 제공하는 제로보드5가 곧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가뜩이나 후회와 자책으로 고민하던 상태에서 제로보드5 소식은 저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습니다.

애초에 꺼져스킨의 작업은 제 능력에 부치는 작업이었으며, 굳이 내가 그 짐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때가되면 개발자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을, 일개 무지랭이가 그걸 만들겠다고 설치던게 너무나 부끄러워 당장 스킨제작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석달동안 집중하면서 진행해왔던 팽팽한 스킨제작의 고무줄이 중간에 툭 끊어져 튕겨지고보니,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어려웠습니다.
병신아 니가 프로그래머야? 니가 뭔데 주제넘게 나서서 그런일을 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여서, 왜 쓸데없이 고생을 사서 해?
지 앞가림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런걸 꼭 만들고 싶냐?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자괴감, 상실감, 패배감에 너무 괴로웠고, 실속없는 짓이나 하고 있던 제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저주스러웠습니다. 그리하여 엉뚱하게도 한동안 잊고(애써 회피해버리고) 있었던 다른 문제들을 끄집어내었고, 결국 다시 돌이킬수 없는.. 평생에 두고두고 후회할..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므로, 그냥 [멍청한 짓]으로 일컫겠습니다.)
제가 {[꺼져스킨]~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후회]로 가득찬 이유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게 된 결정적 계기가 꺼져스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제로보드5의 등장이 기폭제가 되긴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꺼져스킨이 없었다면 멍정한 짓도 없었을것입니다.
어쨌든,, 그러고 얼마안되어서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생각과 함께, 끝장을 보고 싶은 오기가 생겨 스킨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여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2007년 9월 꺼져스킨을 공개하게 되었고, 공개한 이후에도 추가수정은 계속되었으며 앞으로도 가야할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럴테지만,,))
그동안 꺼져스킨에 들였던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고,
그동안 꺼져스킨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약이 올라 죽을 지경입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다른것들을 배웠더라면, 다른것들을 경험했더라면, 내 자신에게 득이 되었을텐데,,,
차라리 그럴 시간에 잠이나 잤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덜 피곤했을텐데,,,
차라리 그럴 시간에 아무생각없이 지냈더라면 속이라도 편했을텐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길고 긴 싸움을 시작했는지 원망스럽습니다.


- 중략 -

꺼져스킨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한 이유의 근거들이 구차하고 설득력이 없으며,
그렇다면 왜,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꺼져스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점 등이 중략의 이유입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표현처럼, 저에게 꺼져스킨은 '욕하면서 만드는 스킨' 입니다.
꺼져스킨을 증오함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틈날때마다(때론 다른일을 제처두고 일부러 틈을내어) 스킨작업을 계속하는 제 자신을 보면 화가 솟구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고 못났나.. 왜 이렇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인지..
그리고 제겐 꺼져스킨과 같은 질긴 악연이 몇개 더 있습니다.
아무래도, 죽어야만 끝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후기 -

6월 20일 이글을 쓰기 시작해서 7월 18일에서야 완료합니다.
생각조차도 싫었던 일들을 다시 끄집어 내려니 글을 쓰면서도 너무 괴로웠고,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글소재에다가 내용 또한 너무 어둡고 시시콜콜하며 지루해 보였고,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도출해내야 하는데 도무지 답이 안나와서 쓰다말다 하기를 수차례...
너무도 불편한 내용을 다루려니 이어쓰기 꺼려져서 한동안은 못본체...
또한 이글이 공개되면 머지않아 또다른 파장을 일으켜 후폭풍을 겪게될 것이기에 망설...
그러다보니 이글을 작성하기까지 한달이나 걸렸습니다.

이글을 씀으로 해서,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거나, 후회와 원망을 떨쳐내지는 못한다는것을 잘 압니다.
다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일부나마 뱉어내니 속은 조금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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